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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전쟁 임진왜란 속 성웅 이순신(적벽대전보다 더 우월한 승리)
    Life story 2010. 6. 12. 23:08


    1. 당시 조선의 대외 관계, 사대교린
    당시 조선은 명과 사대를 다른 나라들과는 교린을 하였다. 사대란 명에게 일방적인 속국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국가대 국가로 발달된 문화와 정치등을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의 내정간섭도 없었으며 조공을 바치면 서적이나 농기구 등을 받아 오는 관계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중의 명의 원군과 성리학의 사상논쟁 등으로 화이사상에 빠지게 되면서 사대의 의미가 변질되어 버린다.
    그리고 남쪽의 일본과 북쪽의 여진족은 교린. 즉 사귀었다는 뜻이다. 때로는 달래고 어루다가도 말을 안들으면 군대로 혼내주는 그런 정책이였다. 그러나 조선 건국이후 장기간 지속된 평화로 인해 북쪽의 여진이 후금을 건국하고 세력을 넓히는 것과 남쪽의 일본이 통일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2. 임진왜란 발발 이전 상황
    일본의 봉건 영주들은 자주 우리 해안을 습격하여 노략질 하였는데, 어렵게 되자 교역을 간청해 왔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제한적인 조공 무역을 허락하였다. 또한 왜구의 수령에게 귀화를 권유하고(토관제도) 관직을 우대하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 뿐만아니라 명에서도 소란을 부려 조공무역을 폐쇄당하여 교역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교역문제가 일본 침략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본 막부가 히데요시에 의해 평정된 후에 악날한 놈이 세력강화를 위해 조선과 명 정벌이라는 광기가 주된 원인이라고 하겠다.

    3. 임진왜란 전개 과정
    잘 설명된 사이트가 많아서 차차 업데이트..

    4. 23전 23승을 거둔 조선 수군삼도도통사 이순신 장군
    왕인 선조와 대신들이 도망다니기 바쁜 전란에서, 전세를 역전시킨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다. 이후 이순신(李舜臣)의 수군은 왜군의 수군을 사천, 당포해전에서 차례로 격파하며 이미 육로로 진격중인 선발부대의 보급로를 차단한다. 이때문에 왜놈들은 부족한 보급물자를 충당하기 위해서 민가를 습격하여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는다. 관군도 패퇴하고 도망가자 이에 의연히 각 계층의 의병이 거병하여 항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전소식을 접한 히데요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 정예수군을 보냈으나 한산도에서 다시 대패한다. 우리 조선수군은 '한산도대첩'이후 제해권을 장악한다.
    수군이 고군분투하자 육지에서도 의병들에 의한 승리와 명의 지원군에 힘입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유성룡(柳成龍)의 활약으로 이여송(李如松)의 명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군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평양성을 탈환한다. 평양 탈환 직후, 명과 일본 사이에 전쟁을 막아보려는 강화가 이루어졌지만 고니시와 심유경의 사기극과 조선 측 입장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인해 강화는 결렬되고, 히데요시는 후방에 남겨놓은 제 2차 침공군을 출동시켜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전쟁이 다시금 발발하자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지속적으로 일본의 보급을 끊었고, 삼남지방에서는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육지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고 후방을 계속 기습하여 전선을 어지럽혔다. 쫓겨간 일본군은 보급을 받으며 다시 북진하려 하였으나 조선군과 명군 때문에 더이상 북진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명량에서 북진하는 일본 수군을 막아 모조리 수장시키고(명량대첩) 지속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한다.
    결국 일본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철수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바다를 건너 철수하고 만다. 이후 질투의 화신 선조는 일본의 매수로 이간질 장계를 올린 명나라 장수를 믿고 잔병의 퇴각로를 열것을 명한다. 그리고 시기질투하는 간신배들까지 거기에 합세한다. 어명을 거역하면 역모로 몰리고 일본을 그대로 보내면 악날한 일본의 재침략을 잘 알고 있기에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는 결단을 내린다. 도망가는 일본군을 관음포로 유인하여 완전히 섬멸한 뒤 전사하셨다.(노량해전)
     명나라와 관계, 어명을 어겼지만 충신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참으로 현명하고 대단한 장부다운 결정인 것이다. 이로써 임진왜란 7년 전쟁 조선의 승리로 종결지었다.

    5.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TV보면서 안구에 습기찬 것은 오직 이것 하나다. 23전 23승. 이건 적벽대전보다 더 큰 승리다. 13척으로 승리한 우리 역사가 더 뛰어나지 않을까. 전쟁의 시간도 길다. 사실 적벽과는 게임이 안된다고 봐야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훨씬 스케일이 크고 뛰어난 지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제갈공명의 병법과 지략은 본받고 싶다. 하지만 모진고초와 외부로부터의 시기질투, 대범한 판단력, 백성으로부터 신망받는 위인이란 사실은 가히 그를 뛰어넘는다 생각한다. 부디 이러한 역사가 대대손손 보존되어 만인에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6. 주적 일본
    그저 유행을 좇아서 일본 패션, j-pop, 만화 등을 접하는 어린 친구들이 한심하지만, 그저 그들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역사를 바로 잡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정부, 교육당국부터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누가 대통령과 장관등의 눈과 귀를 막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당리당략에 빠져 한치앞도 못보는 정치인일지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친일로 일삼은 악날한 매국노들의 처단이 없었던, 지구상에 유일한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다.(다른나라는 친일파는 사형이였다) 이때문에 끊임없는 사회 내부갈등과 적반하장격인 그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 왜 우리나라는 자국의 역사도 바로잡지 못한채 현재를 맞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지금까지 500번 이상의 침략을 하고서도 부족한지 지금도 독도 침탈과 신사참배로 그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이다. 괜히 미워하는게 아니다. 단 한개도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잘한게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대대손손 교육하고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물론, 일본 전부를 매도하는건 아니다. 나도 유키구라모토 같은 자연주의 음악을 좋아하며, 미야자키하야오 같은 반전 애니메이션이나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은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제나 신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가 살았기 떄문에 개중에는 괜찮은 유전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에 대해서 반성하고 일본의 날조된 위서등을 인정하는 양심적인 사학자와 일본인은 힘없는 소수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꼭 칼 맞고서야 정신차리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바늘에 찔려 봐야만 피가 나오고 아픈줄 아는가.. 돈이면 다인가.. 돈도 나라가 있어야 벌고 쓸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갈수록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많다. 껍데기도 외국꺼 닮으려고 기를 쓰고 그 정신도 외국물을 들이는데만 혈안이된 자들.. 좋은걸 따라하면 누가 무어라하겠는가.. 무엇이 이리도 정신을 흐트리는지.. 참...

    7. 사료
    우리 나라의 전함은 매우 굉장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왜선 수십척이 우리나라의 전선 한 척을 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가 되었을 때에 지혜로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 위로 판자로 뚜껑을 만들어 덮었으니, 모양이 거북이 엎드린 것 같다. 그래서 거북선이라고 한다. 임진년에 이르러 이것을 사용하여 승리를 거두었는데, 거북선이 갖고 있던 전략상 우세함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하여 좌수사가 되어서는 백여척의 전함이 격파당하고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이순신이 원균을 대신하여 다시 좌수사가 되어서는 전선 13척을 가지고 바다를 가득히 덮은 6백여척의 적선을 격파하였으니, 역시 장수는 훌륭한 사람을 얻어야 되는 것이다.
    이수광 "지봉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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